부군휘흘 자구지 호 성은 효우지행 가거행의 식준선훈 유광전열 인이효우가도칭언 루거향선종부성명
부군의 함자는 흘이고 자는 구지, 호는 성은이다. 효성스럽고 우애가 깊으며 지극한 행실로 집안에서는 올바르게 행하시며 선조들의 가르침을 따르고 지켜 앞길을 밝히는빛이 있으셨다. 사람들이 효성과 우애로써 집안의 도리를 다한다고 칭하였으며 여러 차례 향선(鄕鮮)에 거론되었으나 끝내 이름을 널리 알리지는 않으셨다.
(아버지께서는) 가정 29년경술 9월 9일 기해일에 태어나셨고 만력 42년 갑인 6월 27일무신일에 돌아가셨다. 어머님은 아버님과 같은 해 11월 7일 병신일에 태어나셨으며, 역시 아버님과 같은 해 4월 16일 무술일에 돌아가셨다. 이에그 해 12월 8일 병오일에 의성현 남쪽 오토산 태향쪽 언덕에합장하였다.
後以掌令公參寧社原從推恩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 妣贈淑夫人
후이장령공참녕사원종추은증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 비증숙부인
후에 장령공이 영사원종공신에 들게 되어 추은을 입어 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에 추증되었고 어머님도 숙부인으로추증되었다.
●行錄
府君諱仡 字懼之 自號城隱 本貫巨濟鵝洲 七世祖諱祐 仕高麗爲全羅道按廉使 以孝旌其閭
부군휘흘 자구지 자호성은 본관거제아주 칠세조휘우 사고려위전라도안렴사 이효정기려
부군(府君)의 함자는 흘(仡)이며 자는 구지(懼之)시다. 스스로 성은이라 칭하셨다. 본관은거제도 아주다. 7세조의 함자는 우, 고려조에 벼슬하시어전라도 안렴사를 지내셨다. 효성이 지극하시어 정려받으셨다.
어머니는 성산이씨로 증조의 함자는 맹전, 봉정대부 사간원 정언이셨으며, 할아버지의 함자는 서, 통덕랑 통례원 통찬이셨고, 아버지는 지원으로 병절교위를 지내셨다.
先君子稟質醇厚 慈祥愷悌 孝友回心 式遵先訓
先君子稟質醇厚 慈祥愷悌 孝友回心 式遵先訓
공은 타고난 성품이 순후하며 자애롭게 살피시고 화목하고 공경하시며 효성과 우애를 마음에 담고 선조들의 가르침을그대로 따르려 하셨다.
歲丙子遭王父憂 廬墓三年 搆小軒於山所 扁曰永慕 以寓孝思
세병자조왕부우 여묘삼년 구소헌어산소 편왈영모 이우효사
병자년에 아버지 상을 당하자 3년간 여막에서 시묘살이 하셨으며, 산소 옆에 작은 집 하나를 짓고 “영모(오래오래 그리워함)”라 편액을 걸어 효성스러운 마음을 표현하였다.
奉養王母 凡十八年 盡其慛愉 癸巳王母棄養 時丁板蕩 葬祭以禮 追慕之心終始不懈
봉양왕모 범십팔년 진기최유 계사왕모기양 시정판탕 장제이례 추모지심 종시부해
어머니를 봉양함이 무릇 18년에 이르는 동안 정성을 다하였으며 계사년에어머니께서 돌아가시니 그때 정녕 크게 어지러웠으나(그때 정묘호란으로 크게 어지러웠으나) 장례건 제례건 예의에 맞추어 치렀으며 추모하는 마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았다.
每値諱辰 先期齋沐祭 需称有無 務精潔以致如在之誠
매치휘진 선기재목제 수칭유무 무정결이치여재지성
돌아가신 날이 되면 미리 목욕재계하고 제수는 있건 없건 잘 갖추었으며 정결하게 하여 마치 살아계신 듯 정성을 다하였다.
事伯父友愛備至 敎諸子必以義方
사백부우애비지 교제자필이의방
큰 아버지를 모시면서 우애를 지극히 갖추었다. 여러 자제들을 의로운방향으로 가르쳤다.
嘗書一絶以戒之曰 持身如履薄 待人一至誠 若不謙受益 恐忝爾所生 又以取友必端 不妄交遊爲戒
상서일절이계지왈 지신여리박 대인일지성 약부겸수익 공첨이소생 우이취우필단 부망교유위계
일찍이 절구 하나를 써서 경계하며 이르되, “자기 몸 건사하기는 신발짝처럼박하게 하고, 남을 대할 때에는 한결같이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라. 겸손하지않으면서 이익을 챙기면 네 자손에게 욕이 될까 걱정하라.” 또 반드시 단아한 이를 벗 삼았으며 망령되지않기를 교유하면서 경계하였다.
향당에 처할 때에는(동리에서는) 겸양하고공손하게 스스로 낮추었으며 남들과 다투지 않으셨다. 누군가 상을 당하면 온 힘을 다하여 서로 구하였다. 계사갑오년(임진왜란 중?) 전란으로어려운 때에 죽조차 제대로 먹기 어려웠어도 굶주리는 친척이 있으면 반드시 두루 마음 써주셨다.
未嘗言人之不善 未嘗與人較是非曲直 家雖貧 亦未嘗有憂歎戚嗟之意 怡然自處 恬靜無爲
미상언인지불선 미상여인교시비곡직 가수빈 역미상유우탄척차지의 이연자처 념정무위
일찍이 남의 나쁜 점을 말씀하신 바 없고 남과 더불어 시비 곡직에 대해 비교한 적 없으셨다. 집안이 비록 가난해도 근심스럽거나 걱정된다는 뜻을 가지시지 않으셨으며 고요하고 자연스러우셨다.
嘗曰 吾見世人 勤苦營産 以遺子孫 而有不能守者 此不知命也
상왈 오견세인 근고영산 이유자손 이유부능수자 차부지명야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 사람들을 보니 애쓰고 노력해서 재산을키워 자손에게 물려주어도 지키지 못하는 일이 있는 것은 자기 운명(명?)을모르는 것이다.” 하셨다.
그리고는 속된 말을 따라서 가사를 지어 이르시되, “하늘은 모두에게운명을 내려 주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 알지 못하고 서로 경영하며 온갖 방법을 꾸며내느라 정신이없다. 나를 위하는 것은 천명을 알고 몸을 닦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개 이로써 편안해지는 것이다.”고 하시었다.
平生以養痾爲事 中年攻擧業而未嘗留意焉
평생이양아위사 중년공거업이미상유의언
평생 모시고 병수발 드는 것을 일삼다가 중년이 되어 과거 공부를 하셨으나 일찍이 마음에 두지는 않으셨다.
先妣 順天朴氏 天性仁孝 事先君子無遺德 訓子弟皆有法
선비 순천박씨 천성인효 사선군자무유덕 훈자제개유법
돌아가신 어머니 순천 박씨께서는 천성이 어질고 효성스러우시며 아버님을 섬기며 유감이 없었고 자제들을 훈육함에 모두법도가 있으셨다.
嗚呼 以吾先君子先妣之德行 宜膺景福 永享遐齡 而旻天不吊 荐降酷罰
嗚呼 以吾先君子先妣之德行 宜膺景福 永享遐齡 而旻天不吊 荐降酷罰
오호라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덕행이라면 마땅히 환히 복을 누리셔야 하고 오래오래 사셔야 하는데 하늘이 살펴주지않으시고 거듭하여 엄한 벌을 내리시고 말았다.
歲甲寅 先君子與先妣 相繼棄代 享年纔六十有五 天乎天乎 其忍是耶
세갑인 선군자여선비 상계기대 향년재육십유오 천호천호 기인시야
갑인년에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서로 이어서 세상을 떠나셨으니 연세가 겨우 65세셨다.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그 차마 이럴 수 있는가.
선군자생어가정이십구년경술구월구일기해 몰어만력사십이년갑인 육월이십칠일무신 선비생어동년십일월칠일병신몰어동년사월십육일무술 수이기년십이월이십팔일병오 합장의성현남오토산태향지원 자녀육인 장왈적도 차왈달도 차왈열도 녀장적사인김유엽무 아버지께서는 가정 29년경술 9월 9일 기해일에 태어나셨고 만력 42년 갑인 6월 27일무신일에 돌아가셨다. 어머님은 아버님과 같은 해 11월 7일 병신일에 태어나셨으며, 역시 아버님과 같은 해 4월 16일 무술일에 돌아가셨다. 이에그 해 12월 8일 병오일에 의성현 남쪽 오토산 태향쪽 언덕에합장하였다. 자녀는 모두 여섯으로 장남은 적도, 차남은 달도, 셋째는 열도이며, 장녀는 사인 김유엽에게 시집갔으며 자식이 없다.
(이하 이어지지 않음)
後 次適訓鍊奉事 任乃重 次適僉正朴宗敎 內外子孫 男女總二十餘人
차적훈련봉사 임내중 차적첨정박종교내외자손 남녀총이십여인
둘째 딸은 훈련원 봉사 임내중에게 시집갔다. 셋째 딸은 첨정 박종교와혼인하였다. 내외 자손이 남녀 20여인이다.
오호라 우리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지 이제 1년이 되었는데 유당(幽堂)에 모실 지문을 아직도 부탁하지 못하였으니 불초한 우리 형제들은감히 서차와 세계, 연월 및 행적의 대략을 가지고 지문을 쓸 수 있는 근거로 삼으려 한다. 천계 원년 신유년 겨울 11월 일에 불초자 열도가 삼가 적었다.
●墓誌(贈承旨申公墓誌)
묘지(신흘, 최현 지음)
公諱仡 字懼之 其先鵝洲人 七世祖諱祐 仕高麗爲全羅道按廉使 以孝旌其門
공휘흘 자구지 기선아주인 칠세조휘우 사고려위전라도안렴사 이효정기문
공의 함자는 흘(仡)이며자는 구지(懼之)시다. 그선조는 (거제도) 아주사람이다. 7세조의 함자는 우, 고려조에 벼슬하시어 전라도 안렴사를 지내셨다. 효성이 지극하시어 정려받으셨다.
병자년에 아버지 상을 당하자 시묘 살이를 법식대로 끝냈으며 어머니를 18년간모시면서 낯빛이나 봉양함에 어그러짐이 없었다. 계사년에 어머니 상을 당하였는데 그때 정녕 크게 어지러워서(? 그때 정묘호란으로 크게 어지러워서?) 예의를 차릴 겨를이 없었음에도상치르고 장례 지냄에 한결같이 예의와 제도를 따랐고 추모하는 정성이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았다. 큰 아버지를모시면서 우애와 공경함을 다하였고 여러 자제들을 의로운 방향으로 가르쳤다. 일찍이 절구하나를 지어 이르되, “자기 몸 건사하기는 신발짝처럼 박하게 하고, 남을 대할 때에는한결같이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라. 겸손하지 않으면서 이익을 챙기면 네 자손에게 욕이 될까 걱정하라.” 또 반드시 단아한 이를 벗 삼았으며 망령되지 않기를 교유하면서 경계하였다.향당에 처할 때에는(동리에서는) 겸양하고 공손하게스스로 낮추었으며 남들과 다투지 않으셨다. 누군가 상을 당하면 온 힘을 다하여 서로 구하지 않음이 없었다.
계갑년 전쟁으로 흉년이 든 해에 죽조차 제대로 먹기 어려웠어도 굶주리는 친척이 있으면 반드시 두루 마음 써주셨다.
평생 나쁜 말을 하시거나 급한 낯빛을 보이시지 않으셨고 입으로 남의 잘못을 말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좋아하고 싫어하시는 것이나 취하고 버리는 바가 한결같이 의로써 하셨으며 바른 도를 굽혀 억지로 맞추려한 적이 없으셨다. 집이 누추하여 텅 비어도 그러려니 하면서 개의치 않으셨고 안타까와 하거나 개탄하지않으셨다.
嘗曰 吾見世人 勤苦營産 以遺子孫 而有不能守者 此不知命也
상왈 오견세인 근고영산 이유자손 이유부능수자 차부지명야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사람들을 보니 애쓰고 노력해서 재산을키워 자손에게 물려주어도 지키지 못하는 일이 있는 것은 자기 운명(명?)을모르는 것이다.” 하셨다.
中年多疾 守靜養痾 攻擧業 屢中鄕鮮 而亦未嘗留意焉
중년다질 수정양아 공거업 누중향선 이역미상유의언
중년에 병이 많아 조용히 정양하시었고 과업에 종사하여 누차 향시에 붙으셨으나 또한 마음에 두지 않으셨다.
甲寅六月二十七日 以疾終于正寢 享年六十五
갑인육월이십칠일 이질종우정침 향년육십오
갑인년 6월 27일에 질환으로정침에서 돌아가셨으니 향년 65세였다.
配順天朴氏 端良仁孝 允恊公德 事君子訓子女 皆可爲壺範
배순천박씨 단량인효 윤협공덕 사군자훈자녀 개가위호범
부인은 순천 박씨로 단아하고 어질며 인자하고 효성스러우셨으며 마땅하고 화합하시어 공정하고 덕이 있으셨다. 지아비 섬김이나 자녀를 훈육함에 모두 규범이 되었다.
與公同年生 而歿亦同年 四月 十六日 是歲 十二月 二十八日 丙午 合葬于義城縣 五土山 兊向之原
여공동년생 이몰역동년 사월 십육일 시세 십이월 이십팔일 병오 합장우의성현 오토산 태향지원
공과 같은 해에 태어났으며 같은 해에 돌아갔는데 4월 16일이었다. 이해 12월 28일 병오에 의성현 오토산 태향 언덕에 합장하였다.
嗚呼 以公兩美之相合 宜其克享遐福 而身不免窮厄 壽亦靳耊 艾天之報 施善人果止於是也耶
오호 이공양미지상합 의기극향하복 이신불면궁액 수역근질 애천지보 시선인과지어시야야
오호, 공께서는 두가지 아름다움이 서로 화합하였으니 마땅히 오래도록복을 누리셔야 마땅할 것인데 몸은 가난과 어려움을 면하지 못하셨고 수명 역시 겨우 여든이라 하늘이 보답하여 착한 이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 과연여기에서 그치고 마는 것인가.
崇禎己巳 贈公通政大夫 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 以男達道 參寧社原從故也
숭정기사 증공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 이남달도 참녕사원종고야
숭정 기사년에 공이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으로 추증되었으니 아들 달도가 영사원종공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녀는 모두 여섯이다. 맏아들은 적도이며 병오년에 진사가 되었고 벼슬은상운도 찰방까지 하였다. 둘째 아들 달도는 계해년 정시에 장원급제하였고 지금은 사헌부 장령이다. 그 다음 아들 열도는 갑자년 증광시에 발탁되었고 병조 좌랑이다. 딸들중 맏이는 선비 김유엽에게 시집갔는데 후사가 없다. 둘째 딸은 훈련원 봉사 임내중에게 시집갔다. 셋째 딸은 첨정 박종교와 혼인하였다. 내외 자손이 남녀 약간 명인데모두 공의 뜻을 따라 집안에서 실천하려는 뜻이 있으니 하늘이 내린 복과 선함의 도리가 오늘날 기대함이 있는 것이다.
장령(달도)이 세계와 행적을기록하여 내게 지문(誌文)을 청하니 나는 공에 대해 이종형제라, 내가 어려서 의지할 아버지를 잃었는데 종모님께서 가엾게 여기셨고, 공또한 친동생처럼 보아주셨습니다. 임진년 전란 때에 공께 의지하여 위아래 없이 목숨을 맡겼으며 생사를같이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형의 행실이 돈독하심을 알았으니 막역하여 동생처럼 여겨주셨습니다. 칭찬하고 높이 받듦에 능하지 못하지만 넘치는 아름다움에는 흠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순후하고 효성스러우며 우애심 깊음이 지극하시고 아름다운 말씀과 마땅하신 행동에 대해 세상에서 칭송하는 바가많으나 지금 모두 서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